10장 1-20절

 10 1-20

1-2.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레위기 10장의 주된 내용은 바른 예배가 무엇인가를 보여주신다. 제사장이 위임받자 사고가 발생했다.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제사장이 제사의 사역을 얼마나 신중하게 해야만 하는지를 보여준다. 당시의 대제사장인 아론에게 네명의 아들이 있었다. 나답과 아비후가 첫째, 둘째였다. 잘못된 제사를 드리므로 죽게 된 것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제사에 있어서 세가지 원칙이 있었다. 잘못된 불을 드리지 말 것, 제사에 있어서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 것, 누룩을 넣지 말고 먹을 것, 이 세가지였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יְהוָה֙ אֵ֣שׁ זָרָ֔ה אֲשֶׁ֧ר לֹ֦א צִוָּ֖ה אֹתָֽם׃

야훼 에쉬() 자라흐(2114모독적인) 아세르(관계사) (아니한) 치우와(명령하지) 오탐(그들에게)

스트롱 코드 2114는 곁길로 가다, 이방인, 길손, 세속인이 되다, 특히(능동태 분사로)간음하다, 이상한 것 등으로 번역된다.

(and offered strange fire before the LORD, which he commanded them not)(kjv)에서 영어번역에서 다른 불은 strange fire(이상한 불)로 표현했다.

제사에 사용하는 불은 번제단에서 타고 있는 불을 가져다가 사용해야만 하는데, 다른 곳에서 불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번제단의 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니면 구원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번제단과 상관없는 불을 사용했다는 것은 십자가 외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 자들이다. 오늘날에도 기독교인이라고 말을 하면서도 모든 종교에서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 자들이 바로 다른 불을 제사에 사용하는 자들이 된다.

갈라디아서 1 7절에서『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다른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받는다고 말을 하면서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율법주의적인 것들이 가만히 들어와서 바울이 긴급히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를 한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율법을 버렸다고 말하지만 율법적으로 신앙생활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라든가, 안식일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든가, 절기를 지키는 행위등을 통해서 다른 복음이 여전히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자유주의적인 복음이 넓게 퍼져있다. 믿기만 구원받는식으로 구원을 왜곡시킨다. 예수를 영접하기만 하면 구원받는 식으로 전한다. 이 모든 것들이 다른 불을 사용하는 것이다. 구원은 오직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외의 것을 전하면 모두 잘못된 불을 사용하는 것이다. 특히 회개의 의미도 모르면서 날마다 회개하는 것을 통해서 예수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야만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 죄의 문제는 옛사람이 죽어야만 해결된다.

로마서 6 7절에서『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예수와 함께 죽은 자에게는 하나님이 죄를 묻지 않으신다. 이 세상에서도 누군가가 죄를 지었는데, 죽어버리면, 공소하지 않는다. 죄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죽었기 때문에 덮어버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의 죄를 덮어버리는 것이다. 그가 의인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죄를 덮어버리므로, 더 하나님이 죄인이 아닌 것으로 봐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심판하지 않으신다. 로마서8 1-2절에서『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 하셨느니라 아론이 잠잠하니

레위기 9 6절에서『모세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니 여호와의 영광이 너희에게 나타나리라』이 명령에 따라서 정해진 불을 드려야 영광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레위기 9 (10, 21)에서 제물을 사용한 것들도 모두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한 것을 볼 수 있다. 오직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며,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마다 구원을 얻게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4 7절에서『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오늘날 많은 교회 사람들이 신비주의에 빠지고, 체험을 원하지만, 바울은 이를 경고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 이외의 것을 경고했다.

레위기 9 24절에서『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더라』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을 때는 레위기 10 2절에서『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4-5.『모세가 아론의 삼촌 웃시엘의 아들 미사엘과 엘사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나아와 너희 형제들을 성소 앞에서 진영 밖으로 메고 나가라 하매 그들이 나와 모세가 말한 대로 그들을 옷 입은 채 진영 밖으로 메어 내니

나답과 아비후처럼 오늘날 교회 사람들은 불로 심판받아야 할 존재이며, 불로 심판받은 자들은 진영 밖으로 매여 나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 밖에서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와 연합된다는 말은 죄에 대해서 죽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도 불로 타죽은 자들이 되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연합하여 죽은 자는 옛사람이 죄에 대해서 죽었지만, 육체로 비롯된 혼의 옷은 불에 타 죽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그래서 옛옷을 벗어버리고, 새옷인 그리스도의 옷으로 갏아입어라는 말이다.

 

6.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이르되 너희는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가 죽음을 면하고 여호와의 진노가 온 회중에게 미침을 면하게 하라 오직 너희 형제 이스라엘 온 족속은 여호와께서 치신 불로 말미암아 슬퍼할 것이니라

표면적으로는 고대 근동 지역에서 극도의 슬픔을 나타낼 때는 머리를 풀어 헤치거나 옷의 가슴 부분을 갈기갈기 찢는 풍습이 있었다. 그러나 여호와를 섬기기 위해 특별히 성별된 제사장의 경우, 인간적인 슬픔을 표시하기 위해 머리에 쓴 관을 벗음으로 머리를 헝클어 뜨리거나 세마포 제의를 찢는 것은 곧 제사장 직분을 중단하거나 임의로 거부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이는 제사장들에게 금지되었는데, 만일 이 명령을 어기는 경우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가벼히 여기는 범죄로 여호와의 진노를 부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제사장들의 애곡을 금지시키는 본 규례를 통해 하나님의 종들은 가족 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는 교훈을 배울 수 있다누가복음 1426절『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특별히 여기서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은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죽임을 당한 것인 만큼, 더욱 근신하여 슬픔을 자제해야 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일종의 불만을 터뜨리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제사장의 범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사실이다. 백성의 영적 지도자된 자들의 책임성을 분명하게 일깨워 준다. 제사장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규례를 범함으로써, 그분의 심판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다면 그것은 곧 모든 백성이 여호와를 거스리는 결과가 되어 그분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제사장과는 달리 일반 백성들에게는 애도의 표현이 허락되었다. 그러나 이 슬픔의 표현은 하나님을 원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들 사이를 연결하는 중재자를 잃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것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 형제들의 슬픔을 억제시킨 것은 그들이 맡은 임무의 중요성 때문이지 형제애까지 끊고 맹목적인 순종 만을 강요하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알려주고자 하는 의미는『오직 너희 형제 이스라엘 온 족속은 여호와께서 치신 불로 말미암아 슬퍼할 것이니라』

וַאֲחֵיכֶם֙ כָּל־בֵּ֣ית יִשְׂרָאֵ֔ל יִבְכּוּ֙ אֶת־הַשְּׂרֵפָ֔ה אֲשֶׁ֖ר שָׂרַ֥ף יְהוָֽה׃

(모든) 베트() 이스라엘 이브쿠(바카:애통하다) 에트(격조사) 하쉐레파(쉐레파:불타는) 아세르(관계사) 샤라프(불붙인) 야훼

다시 번역하면, 모든 이스라엘의 집은 여호와께서 불붙여 불태움으로 애통하라 하나님께서 애통하는 자에게 불세례를 통해서 죽어야 할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신다. 팔복에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것이요” 애통하다는 말은 원통해서 통한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었는데, 사탄에게 속아서 하나님의 장막을 빼앗기고, 물질세계의 흙 속에 갇혀있는 것을 깨닫고 보니, 너무나 원통하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18 7절에서『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이 세상에 쫒겨온 자들이 빼앗긴 영의 몸을 다시 회복시켜 달라고 밤낮 부르짖으라는 것이다. 택하신 자들은 이런 기도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탕자의 비유처럼, 죽은 것같이 되어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시편 135 14절에서『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며 그의 종들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으시리로다』여기에서『위로』라는 말이 출애굽기 32 14절에서는『돌이키다』라는 말로 표현되었다.『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이스라엘 백성들의 금송아지 사건에서, 모세의 간곡한 기도를 듣고 하나님이 돌이키시는 말씀이다.『돌이키다』라는 말의 헬라어(파라칼레오)는『파라』(곁으로)와 『칼레오』(위로,격려)라는 말의 합성어로『다시 곁으로 불러준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7.여호와의 관유가 너희에게 있은즉 너희는 회막 문에 나가지 말라 그리하면 죽음을 면하리라 그들이 모세의 말대로 하니라

아론과 남은 두 아들(엘르아살과 이다말)은 여호와의 관유로 기름부음을 받아 특별히 제사장으로 성별된 자들이다. 이처럼 제사장들에게 거룩한 관유를 부은 것은 그들로 하여금 전적으로 여호와만 섬기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여호와를 향한 절대적 헌신에서 돌이킬 수 없음을 확증하는 표이다. 신약 시대에 이르러 이 말씀은 예수의 제자가 되고자 하나, 먼저 부친의 장사를 지낸 후 예수를 따르겠다고 하는 자에게 예수께서 하신 말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8:22)고 하신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회막 문에 나가지 말아서』죽은 자들의 시체에 접촉함으로써 부정하게 되거나 그들의 장례를 위해서 무덤까지 가는 것을 금하신 말씀이다. 이처럼 제사장들은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여호와를 섬기는 신성한 목적에서 떠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 말이 제사장들은 죽을 때까지 성막 밖으로 나올 수 없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그들은 결혼을 해서 자기 생활을 영위하였으며, 제사 의식의 집행외에도 백성의 종교 교육과 국가 및 개인의 일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따라서 여기 회막 문을 나오지 말라는 명령은 제사장의 직무수행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 회막 문 밖으로 절대 나오지 말라는 뜻이다.

왕 같은 제사장이 된 성도는 그리스도 밖으로 나가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되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 하나님도 좋고 세상도 좋은 식으로 생각하면 안되는 것이다.

 

8-11.여호와께서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와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 죽음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영한 규례라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또 나 여호와가 모세를 통하여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게 되면 술에 취하는 자가 된다. 술에 취하면, 말을 제대로 정확하게 할 수 없고 횡설수설하게도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제사를 맡은 자가 하나님의 규례를 정확히 지키려면 온전한 정신에도 실수할 수 있는데, 술에 취하면 더욱더 실수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서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술취한 자들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성경 말씀을 성경이 말하고 있는대로 말하지 않고, 성경을 왜곡하거나 때에 따라서 변개시키거나 하는 일들이 자행되고 있으며, 이러한 모든 일들이 술취한 자들의 모습인 것이다.

에베소서 5 18절에서『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성경을 자기의 생각대로 세상적인 것을 중심으로 말하지 말고, 성령님이 인도하심에 따라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전하라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 사람들은 성경을 통해서 세상의 것을 구하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것을 구하지 않으면 다 술 취하는 자가 된다. 교회가 기복적으로 변하고 있는 이유는 술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잠언 23장에서 술취하는 내용이 있다. 33-34절에서『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구부러진 말을 할 것이며 너는 바다 가운데에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하늘의 성경 말씀을 이 세상의 것으로 말하면, 모두가 이 같은 자가 된다.

『모든 규례를...가르치리라』 제사장들에게는 제사 의식을 집행하는 일 외에도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부분이다. 실로 제사장들에게 있어서 백성을 가르치는 일은 제사 의식을 집행하는 직무와 다름없이 필수적이고 거룩한 봉사이다. 규례를 가르치라는 것은 규례를 몰라서 가르치라는 것이 아니라, 그 규례 속에 있는 의미를 정확히 알려주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의 규례에 대한 의미를 정확히 깨닫지 못한 것이다. 율법 속에 그리스도를 발견해야만 했는데,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12-13.모세가 아론과 그 남은 아들 엘르아살에게와 이다말에게 이르되 여호와께 드린 화제물 중 소제의 남은 것은 지극히 거룩하니 너희는 그것을 취하여 누룩을 넣지 말고 제단 곁에서 먹되 이는 여호와의 화제물 중 네 소득과 네 아들들의 소득인즉 너희는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으라 내가 명령을 받았느니라

『화제 중 소제의 남은 것』일반적으로 화제는 속죄제, 번제 등과 같은 제사의 한 종류가 아니라, 제사를 드리는 방법의 하나로 희생 제물을 제단에서 불로 태워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를 총칭한 것이다. 여기서의 화제는 아론과 그 아들들이 제사장의 직무를 처음 수행하던 날 여호와께 드리기 위해 준비했던 번제 제물을 가리킨다.

이 번제 제물을 불에 태워 바칠 때 소제로 바쳐진 기름섞인 고운 밀가루의 일부를 번제물과 함께 태워 드리고, 그 남은 부분은 제사장의몫으로 돌려졌는데 이것을 지칭한 것이다.

소제물은 히브리어로 민하(מִּנְחָ֔ה기본형 4503)라고 한다. 분배하다, 선물, 봉헌물, 소제, 희생제물을 의미한다. 남은 것은 베하노테레트(기본형은 야타르 이다 3498) 기본어근;‘돌출하다’, 또는‘넘다’함축적으로 능가하다(자동사로) 남다, 또는 남기다 사역동사로 남기다 등으로 사용되었다.

 

하나님께 드리고 남은 소제물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양식이 되었다. 남은 것은 남은 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사야 19절에서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남은 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소제물로 바쳐진 제물 중 제사장의 몫으로 돌려진 것을 먹을 때는 단 곁의 거룩한 장소, 곧 회막 뜰에서 누룩을 넣지 않은 상태로 먹으라는 말이다. 이처럼 누룩(leaven, KJV;yeast, NIV)이 금지된 것은 누룩 그 자체가 부정한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의 빨리 퍼지는 속성으로 인해 누룩은 죄의 오염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누룩은 발효되어 원래의 것을 바꾸어버린다. 먹을 것은 말씀이다. 말씀이 변질되면 누룩을 넣은 것같이 되어 버린다.

고린도전서 5 7-8절에서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진실함의 떡은 오직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것으로 생명의 말이라고 한다면 모두 누룩으로 변형된 것이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 라거나, 예수를 영접하면 구원받는다 라고 말하는 것이 누룩일 가능성이 있다. 회개하여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반드시 전제되지 않으면 모두 누룩이 들어있는 음식이 되는 것이다.

 

14.흔든 가슴과 들어올린 뒷다리는 너와 네 자녀가 너와 함께 정결한 곳에서 먹을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물 중에서 네 소득과 네 아들들의 소득으로 주신 것임이니라

가슴과 뒷다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에 참여하는 자의 모습이다. 부활은 하늘로부터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화목한 결과이다.

 

15.그 들어올린 뒷다리와 흔든 가슴을 화제물의 기름과 함께 가져다가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대로 너와 네 자손의 영원한 소득이니라

레위기 921절에서』가슴들과 오른쪽 뒷다리를 그가 여호와 앞에 요제로 흔드니 모세가 명령한 것과 같았더라』 요제란 흔들어 드리는 제사라는 뜻인데, 앞뒤로 흔드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흔드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의미이고, 뒤로 흔드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시 돌려주신다는 의미다. 요제로 드린 제물은 하나님께서 제사장 몫으로 다시 돌려주셨다는 뜻이다. 요제로 드린 제물은 제사장의 몫이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바쳤다는 말과 제사장에게 주었다는 말이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볼 때에 제물을 들고 흔드는 것은 자신의 옛것이 죽었고 하나님이 새로운 것으로 주셨다는 것이다.

 

16-17.모세가 속죄제 드린 염소를 찾은즉 이미 불살랐는지라 그가 아론의 남은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노하여 이르되 이 속죄제물은 지극히 거룩하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거룩한 곳에서 먹지 아니하였느냐 이는 너희로 회중의 죄를 담당하여 그들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죄하게 하려고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속죄제 드린 염소를 찾은즉』곧 모세가 제사장 임직시 회중의 죄사함을 위해 속죄제로 드린 제물의 고기를 아론과 그 아들들의 몫으로 돌려 그들의 양식을 삼도록 하기 위해 찾은 것을 가리킨다.

제사 규례상 회중의 범죄를 속하기 위해 드리는 일반 속죄제의 경우, 제사장이 그 희생 제물의 피를 성소까지 가지고 들어가 단 주위에 뿌리므로 그 고기는 먹을 수 없었다. 반면 아론과 그 아들들이 제사장으로서 첫 직무에 임하는 날, 이스라엘 전 회중을 정결케 하기 위하여 드린 속죄 제물은 그 희생 제물의 피를 성소에 가지고 들어가지 않았으므로 이 속죄제의 고기는 아론과 그 아들들이 거룩한 곳에서 먹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모세는 그 속죄제의 고기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 고기는 부활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그 살이 바로 성만찬 때 먹는 빵이며, 속죄제로 드린 염소 고기인 것이다.

『이미 불살랐는지라』여기서 불사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사라프 (שֹׂרָ֑ף)는 완전히 불태워 없애 버리다, 소각하다 는 뜻으로 제단 위에서 불태워 드린 것이 아니라, 진 바깥 재 버리는 곳에서 태워버린 것을 의미한다. 불세례를 통해서 혼의 죽음을 의미한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노하여』대제사장 아론에게는 본래 네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중 나답과 아비후는 제사 규례를 어긴 죄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 그러므로 대제사장 아론에게는 두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 밖에 남지 않았는데, 바로 이들이 일반 제사장이 되어 아론을 도와 제사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모세가 속죄제 고기를 찾다가 그것이 없자, 이들에게화를 낸 것은 아마 이 고기를 바깥 재 버리는 곳에서 태워버리는 일에 이들이 직접 간여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여기서 노하다 라는  뜻의 카차프(קְצֹף )는 틈이 생기다, 쪼개지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오늘날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죄를 사해짐을 믿지만, 살아있을 때 부활은 믿지 않는 것이다. 현재적인 것을 믿지 많고 육신이 죽어서 이루어지는 먼 미래의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날마다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고 믿는 자들은 죄의 사하심과 부활이 그들에게 현재적으로 임하지 않은 것이다, 죄의 사하심은 과거의 것으로, 부활은 미래의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회중의 죄를 담당하여』제사장이 그 고기를 먹어야 할 이유가 분명하게 제시되어있다. 즉 그 이유 및 목적은 제사장이 여호와 앞에서 중재자의 자격으로 이스라엘 회중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속죄하기 위함이다. 죄를 속죄하면, 하나님이 거룩한 몸을 주시는 것이다. 단지 속만이 아니라, 부활하게 하신다. 성도는 예수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자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18.그 피는 성소에 들여오지 아니하는 것이었으니 그 제물은 너희가 내가 명령한 대로 거룩한 곳에서 먹었어야 했을 것이니라

제사장, 곧 아론과 그 아들들이 속죄 제물로 바쳐진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이유가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다. 즉 아론과 그 아들들이 제사장 직무를 시작하던 날 드린 속죄 제물은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특정한 범죄를 했기 때문에 드린것이 아니라, 단지 그들의 정결을 위해 드린 것으로써, 그 속죄 제물의 피를 성소 안으로 가지고 들어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제사장이 거룩한 곳에서 먹을 수 있었다.

피는 죄를 속죄하는 의미를 갖지만, 제물을 먹는 것은 부활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거룩한 곳에서 먹었어야 했다. 여기서 거룩한 곳은 회막 내 뜰을 가리킨다. 한편 이처럼 제사장이 거룩한 회막 뜰에서 희생 제물의 고기를 먹는 행위 자체도 전체 제사 내용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십자가의 죽음은 부활을 함깨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19-20.아론이 모세에게 이르되 오늘 그들이 그 속죄제와 번제를 여호와께 드렸어도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거늘 오늘 내가 속죄제물을 먹었더라면 여호와께서 어찌 좋게 여기셨으리요 모세가 그 말을 듣고 좋게 여겼더라

아론과 그 아들들이 모세로부터 속죄 제물을 먹지 않은 것에 대해 책망을 듣고, 아론이 겸손한 마음으로 진솔하게 변명하고 있는 내용이다. 아론이 그 속죄 고기를 먹지 않은 것이 하나님의 명령을 고의로 어긴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고자 노력했다는 점이 인정되었으므로 그는 이 문제로 인해 징계를 받지 아니하였다. 모세가 아론의 진솔한 변명을 듣고 아론의 행위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에서 나온 것임을 깨달아 그의 처신을 묵인해 준 것을 뜻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부활을 동시에 나타낸다. 성도가 십자가에서 예수와 연합하여 죽으면, 하나님이 부활시켜주시는 것이다.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나타내는 것이다. 부활은 하늘로부터 태어남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것이다.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은 죄인이 해야 할 사항이지만, 의에 대해서 사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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