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장 1-37절
19장 1-37절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거룩한 삶을 위한 규례라고 할 수 있다.
거룩한 삶에 대해서 사람들은『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았으니, 이제는 거룩한 삶을 살아서
성화되도록 해야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구원은 예수를 믿어서 구원받는다 라고 말한다면 완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이 믿음이다. 즉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것을 믿는 것이 거룩이다. 자기가 무엇인가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라는
존재가 하나님 앞에서 죽는 것, 드려지는 삶이 구원이요, 성화인
것이다. 그래서 구원과 성화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화는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다. 그러면 하난미이 하늘로부터 태어나게 해 주신다. 하늘로부터 태어남이 바로 거룩이요, 부활인 것이다.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베드로전서 1장 15-16절에서『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인간이 예수님처럼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행실을 예수 십자가에 못박아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룩해지는 것이다. 이게 부활이다. 현재적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아니요 거룩한 자가 되지 못한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라고
하시면서 규례를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규례를 지키면 거룩해진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규례를 완전히 지킬 수 있는 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너희들은 죄인이라는 것을 말씀해주신다. 죄인들이므로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것이다. 장차 오실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이 바로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도 이와 같은 개념이다. 오늘날 안식일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아직 그리스도가 그에게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계속 기다리고 있다는 말씀이다.
3.『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육신의 부모가 있듯이 영의 아버지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신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것이다. 죄인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안식은 쉬는 개념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하나가 되는 것이 안식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 죄인으로 있을 때는
안식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육적인 옛사람이 죽을 때, 안식에 들어가게 된다. 예수님이 바로 안식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31장 13절에서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함이라』 대대의 표징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거룩하다라고 인정하시고, 안식에 들어가게 하신다. 예수와
함께 옛사람이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사람으로 부활하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4장 11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힘쓴다는 표현은 순종한다는 것이다. 순종은
바로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다.
4.『너희는 헛된 것들에게로 향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우상은 인간들 자기를 위하여 하는 것들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이다. 자기가
왜 우상인가? 바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백성이라고 말을 하면서도 자기를 위해 살아간다면, 그가 곧 우상숭배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영적 간음자라는 것이다. 자기를 위해 살아가는 자들은 이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우상
숭배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간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너희들은 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난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골로새서 3장 5절에서『탐심이 곧 우상이라』고 했다. 인간 속에 탐심이 있는 한
구원받지 못한다. 그래서 탐심이 죽어야만 한다. 로마서에서는
탐심을 옛사람으로 표현했다.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5-8.『너희는 화목제물을 여호와께 드릴 때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리고 그 제물은 드리는 날과
이튿날에 먹고 셋째 날까지 남았거든 불사르라 셋째 날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가증한 것이 되어 기쁘게 받으심이 되지 못하고 그것을 먹는 자는 여호와의
성물을 더럽힘으로 말미암아 죄를 담당하리니 그가 그의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드리는
영적예배를 말한다. 하나님 앞에서 멸해지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남으면 안된다.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삶이 되어야 함을 말해주신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옛사람은 죽고, 하늘로부터 태어난 새사람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된다.
셋째 날은 부활을 의미한다. 이전의 것이 완전히 죽어야 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는 물세례와 불세례로 표현된다. 물세례는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이고, 불세례는 혼이라는 옷이 불에 타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새옷(그리스도의 옷:영의 몸)으로 갈아입으라는 것이다. 육과 혈은 거룩한 삶을 받을 수 없지만, 영의 몸으로 태어나는 자들은 성령께서 인도하시므로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9-10.『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은 영적으로 하나님을
떠난 자를 말한다. 그래서 거듭난 자들은 영을 살리는 것에 대해서 마치 가난한 자를 돕듯이 하라는 것이다.
11-12. 『너희는 도둑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하지 말며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거짓 선지자들이 퍼뜨리는 비진리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참 진리의 양식을 먹어야 하는데, 먹지 못하도록 비진리를 전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거짓 목사들이 이렇게 비진리로 설교하는 것이다. 그래서
거짓목사들이 사탄의 일꾼이 되어 그들의 생명 양식을 빼앗는다. 예를 들어 예수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
라는 말을 한다. 내가 믿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나라는 존재는 믿음의 주체가 될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믿음 만이 주체가 된다. 믿음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이 전제가 된 믿음이 되어야만 구원받는 것이다. 믿음
이외에도 회개, 부활, 재림 등에 대해서 여러가지 잘못된
말을 전하고 있다.
성경의 비진리를 선포하는 자는 이웃에 대해서 거짓 증거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가증한 자로서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않으신다.
맹세에 대해서 『지키라』는
것이 구약성경의 가르침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백성들이 자원하여 맹세하는 것은 금하지 않았으며, 만약 맹세했다면 반드시 지키라고 명했다. 그런데 민수기(30:3-16) 에서 『미혼여자의 서약은 아버지가, 아내의 서약은
남편이 그 유효성 즉 준행할 의무 여부를 최종 결정하여 취소할 수도 있다』고 했다. 율법은 인간의 판단
착오나 어리석음으로 맹세를 잘못하게 되는 경우에 대한 해결책까지 제시하고 있다.
이 모든 일들은 사탄이 주는 것이다. 사탄은 하나님 나라에서 다른 영들을 속이고, 파멸로 이끌어간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항상 이러한 일들을
기억하며, 사탄의 미혹에 빠지지 말도록 경고하고 있다.
13-14.『너는 네 이웃을 억압하지 말며 착취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맹인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착취당하는 자, 귀먹은 자, 맹인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누가 그렇게 하였는가? 바로 사탄이 미혹했기 때문에 이 세상에 갇힌
것이다.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떠나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면, 도피성에
갇히듯이, 하나님 나라에서 쫒겨와 이 세상에 갇힌 자를 말한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모르는 자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베풀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베푸는
것은 곧 죽었던 영을 살리는 일이다.
15-16.『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 너는 네 백성 중에 돌아다니며 사람을 비방하지 말며 네 이웃의 피를 흘려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공의로운 재판은 오직 하나님 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남을 비판하고 판단하는 것은 신성모독이 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영을 살려야 하는데, 그로 인해 영을 죽이는
일이 되면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는 일과 같은 것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직접 심판하시지 않고, 그가 하는 말이 심판한다고 하신다. 요한복음 12장 47-48절에서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17-18.『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네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 그러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영적인 형제들이다. 그래서 형제를 사랑하라고 하신다. 왜냐하면 영적인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적은 사탄이다. 그런데, 영적
공동체가 분열되면 사탄을 좋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제를 미워하면, 사탄을 이롭게하므로 곧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 된다.
19.『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 네 가축을 다른 종류와 교미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
레위기는 크게 제의적 규례와 일상 생활에서의 규례로 나뉜다. 그 중에서도 생활 규례는
그것이 보건적 의미를 담고 있다기보다 그 규례를 반복적으로 지켜냄으로써 거룩하게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데 의의가 있었다. 그래서 이러한 생활 규례들은 대체로 당시 고대 중동 지방에 널리 퍼져있었던 풍습이나 악습등과는 분명하게 구별된다는
특징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종류 두가지의 것을 교미하거나 파종하거나 섞지 말 것을 명령하셨다. 창세기 1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는 분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빛과
어둠이 분리되어 땅과 물이 분리되면서 점차 혼돈과 무질서가 조화와 질서로 바뀌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백성이 추구해야 할 거룩 역시 구별과 분리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19절의 규례를 삶 속에서 지키면서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날마다 새롭게 기억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들의 정체성은 자손과 땅에 대한 언약이다. 하나님은 여인의 후손인 씨(자손)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가나안(땅)을 약속하셨다. 씨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오늘날 가나안은 예수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성도를 의미한다. 성도의 심령 속에 하나님나라가 세워지는 지는 것이다. 오늘날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을 인본주의 율법주의 영지주의로 섞어버린다. 그래서 하나님도 좋고 세상도 좋은 것으로 변질시키는 것이다.
20-22.『만일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정혼한 여종 곧 아직 속량되거나 해방되지 못한 여인과 동침하여
설정하면 그것은 책망을 받을 일이니라 그러나 그들은 죽임을 당하지는 아니하리니 그 여인이 해방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니라 그 남자는 그 속건제물 곧
속건제 숫양을 회막 문 여호와께로 끌고 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가 범한 죄를 위하여 그 속건제의 숫양으로 여호와 앞에 속죄할 것이요 그리하면 그가 범한 죄를 사함 받으리라』
하나님의 규례는 당시 신분사회 속에서 살아갔던 여종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여종은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가기로 한 여자인데 아직 그 주인이 값을 받지 못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당시 다른
이방 나라들에서 여종은 사람이 아닌 소유물에 불과했기에 주인이 마음대로 범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달라야 했다. 아무리 주인의 소유된 여종이라 할지라도 그녀를 함부로 다뤄서는 안되었다.
여자가 자유인인 경우, 남자의 위력으로 겁탈할 때 남자를 강력한 형벌로 처벌함으로써 여자가
보호받을 수 있었지만, 주인에게 저항할 수 없는 여종의 경우에는 보호받을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정혼한 여종을 범한 주인에게 속건제를 드려 하나님께 속죄할 것을 명령하셨다. 종은 하나님 나라를 떠난 자를 상징한다. 그래서 속죄를 통해서 그것을
깨닫도록 하셨다. 그리고 다시 하나가 되는 것것이다.
23-25.『너희가 그 땅에 들어가 각종 과목을 심거든 그 열매는 아직 할례 받지 못한 것으로 여기되
곧 삼 년 동안 너희는 그것을 할례 받지 못한 것으로 여겨 먹지 말 것이요 넷째 해에는 그 모든 과실이 거룩하니 여호와께 드려 찬송할 것이며 다섯째 해에는 그 열매를 먹을지니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 소산이 풍성하리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척박한 광야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과일 나무를 심을 것이라는 말씀은 큰 설레임으로 다가
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대와는 달리 하나님께서는 과일 나무가 3년이
지나야 거룩하게 되어 그 열매를 먹을 수 있음을 말씀하신다. 또 4년째의
열매는 거룩하게 되어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첫 열매이기에 전적으로 하나님께 드리고 5년째 되는 열매부터
그들이 먹을 수 있다고 명령하셨다.
창세기 1장 9-13절에서『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삼(3)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모리야 산을 삼일 길을 갔다고 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셨다. 야곱이 외삼촌
집에서 나와서 삼일길을 도망한 것이다. 요나도 삼일 간 물고기 뱃속에 있었다.
사(4)는 광야를 의미한다. 광야에서는 시험을 받는 것과 말씀으로 양육하는
의미가 들어있다. 예수님이 사탄으로부터 광야에서 시험을 받았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사탄으로부터 수많은 시험을 당했다. 그래서 예수님이 광야에서 시험을 이기듯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 역시 이기는 자가 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오(5)는 율법 속의
죄인을 상징한다. 궁극적으로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율법 속에 갇혀있는 자들이며, 하나님께 죽어야 할 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자가 하늘의 복을 얻는 것이다. 성도가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은 자기를 드리는 것이고, 부활은 하나님으로부터 새생명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게 된다.
26-28.『너희는 무엇이든지 피째 먹지 말며 점을 치지 말며 술법을
행하지 말며 머리 가를 둥글게 깎지 말며 수염 끝을 손상하지 말며 죽은 자 때문에 너희의 살에 문신을 하지 말며 무늬를 놓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표면적으로는 이런 행위들은 모두 당시 이방인의 이교적 풍습들을 의미했다. 피째 먹지 말라는
것은 피는 생명을 상징하므로 생명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뜻이며, 점을 치거나 술법을 행하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며, 머리를 둥글게 깍거나 수염 끝을 손상하지 말라는 것은
당시 이방의 문화와 종교를 반영하는 외모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죽은 자를 위해 문신을 하거나 피부를
상하게 하는 행위는 자신이 특정한 우상에게 속하였다는 표시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속한 백성들은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행위였다.
그러나 영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첫째, 피째 먹지 말라는 것이다. 육신적으로 먹지 말고 영적으로 먹으라는 것이다. 제사를 제의적으로 드리면 살육이 된다는 말이다. 잘못된 피흘림이
된다. 그러나 영적으로 피를 마시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이다.
둘째, 점을 치지 말며 술법을 행하지 말라는 것이다. 점을 치는 것은 무당에게 의존하는 것이다. 무당은 귀신을 불러내어
점을 치는 것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인 것이다. 오늘날 복음을 받아드리는 자가 하나님도 좋고 세상의
것도 좋으면 영적 간음의 상태가 된다. 그리고 세상의 것을 위해 기도하면, 결국 마귀에게 기도하는 것과 같은 이치가 되는 것이다.
셋째, 머리 가를 둥글게 깎지 말며 수염 끝을 손상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런
행위들은 결국 의식화되고, 율법주의로 흐르게 된다. 행위를
통해서 무엇인가 영감을 찾으려는 것이다. 모든 종교가 대부분 어떤 행위를 통해서 영적 교훈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넷째, 너희의 살에 문신을 하지 말며 무늬를 놓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할례를 명하셨다. 할례는 육체의 죽음을 상징한다. 너희들은
다 죽어야 할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고, 할례를 통해서 장차 오실 약속의 씨인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이와 유사하게 몸에 문신을 하거나
어떤 모양의 표시를 하는 것은 마치 신적인 계시를 받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29-30.『네 딸을 더럽혀 창녀가 되게 하지 말라 음행이 전국에 퍼져 죄악이 가득할까 하노라 내 안식일을 지키고 내 성소를 귀히 여기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딸이 창녀가 되는 데에는 여러가지 사연이 있을 수 있겠으나 문맥상으로는 이방 신전에서 일하는 창녀가 되는 것을 금기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 이방 종교에서는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신전에 소속된 창녀와 음란한 성관계를 맺는 의식이
있었는데 이러한 음란한 문화는 온 사회에 퍼져 죄악이 일상이 되게 만들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런 행위에 빠지기보다 안식일을 지키고 하나님께 예배 드리게 함으로써 죄악을 향한 시선이 하나님께 돌려지도록 하셨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그들에게 안식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신다. 그래서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것이다. 그리스가 안식의 주인이시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가 안식하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 성전은 마치 이방 신전과 같이 장사하는 곳이 되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것을 예언 하셨으며, A.D. 70년
경에 로마에 의해 무너졌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약 70년간은
회개의 기간임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성전은 부활한 성도의 심령 속에 세워진 성전을 의미한다. 수많은 교회 사람들은 이 성전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것이다, 성전이
세워진 성도는 십사만 사천이 되며, 천년왕국이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그의 심령 속으로 재림하셔서 그와 더불어 천년왕국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교회 사람들의 대부분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지만, 참 성도는 이미 재림이 이루어지고,
부활도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고 있으므로 그들은 안식이
이루어지지 않은 자들로서, 여전히 율법 안에서 살고 있는 자들이다. 날마다
죄를 회개하고, 예수의 피를 요구하는 것이다.
31.『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26절의 점치는 행위는 생활 가운데서 습관적으로
행해진 행위였다면 31절의 그것은 죽은 자의 영들을 접하는 의지적인 의식을 뜻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행동을 하는 자들에게서 완전히 돌이켜 하나님께만 시선을 둘 것을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오직 대언자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메시저(천사)를 통해서
알려주시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신다. 그래서
백성들은 하나님을 정확히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여호와라고 하셨다. 오직 유일한 존재하시는 분이라는 말이다. 여호와 외의 신은 모두
자기를 위한 진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신도들은 과연 참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지만, 하나님은 나는 너를 모른다 라고 말을 하면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은
오직 산자의 하나님이시다. 예수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함을 믿지 않는다면 산자의 하나님이
아닌 것이다. 왜 예수와 함께 죽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의 영이 흙속에 갇혀
인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인이 된다. 감옥에 갇힌
죄인이라는 말이다. 죽어야 감옥에서 풀려 나오는데, 반드시
예수와 함께 죽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그리스도가 되어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이다.
32.『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מִפְּנֵ֤י שֵׂיבָה֙ תָּק֔וּם וְהָדַרְתָּ֖ פְּנֵ֣י זָקֵ֑ן וְיָרֵ֥אתָ מֵּאֱלֹהֶ֖יךָ אֲנִ֥י יְהוָֽה׃
פ
앞의 말씀들이 세상과 거룩하게 구별되는 규례였다면 32절부터의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지켜야 할 규례들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이 규례는 노인을 공경하라는 말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규례와 함께 붙어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담고 있다.
센머리는 쉐바( שֵׂיבָה֙ )라고 하는데, 백발, 회색머리를 의미한다. 백발머리는
죽음을 상징한다. 일어나고(쿰ק֔וּם)은 죽은 자 가운데서, 일너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죽었던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떼 달리다쿰(아이야 일어나라)라고
말씀하셨다.
노인이라고 번역된 자켄(זָקֵ֑ן)은 옛사람, 늙은(남자, 남자들, 그리고 …여자들),장로
등의 의미를 갖는다. 옛사람은 반드시 죽지만,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새사람으로 되는 것을 의미한다.
33-34.『거류민이 너희의 땅에 거류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었느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표면적으로는 당시 타국인들은 오늘날의 국제법상의 보호를 전혀 받을 수 없었기에 33절의
규례는 고대 중동사회에서는 독특한 법이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보호받을 수 없는 약자일 수 밖에 없는
타국인들을 학대하지 말고 같은 민족의 사람처럼 의지적이고 적극적으로 사랑해주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규례를 지킴으로써 자신들이 하나님이 아니면 애굽을 탈출하여 자유인이 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겸손과 긍휼로 사람을 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영적인 교훈으로서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자들은 나그네라는 것이다. 나그네는 잠시 머물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자들이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온
목적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이다. 옥에 갇힌 자를 놓아주고 포로된 자를 자유케하기 위해서 흑암에
처한 자를 놓아주기 위하여 오셨다 라는 것이다. 내가 죄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내가 옥에 갇혔다 라고
할 수 있으며, 흑암에 있는 자라고 말할 수 있고, 사망에
빠진 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이런 상태가 된다 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빛이시므로 하나님을 떠난 것이 흑암에 갇혀있다 라는 것이다. 죄인이라는
것은 이런 의미를 다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에 있는 감옥을 연상하게 된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씀하는 옥에 갇혔다 라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육체 속에 들어와서 그 영이 제 구실을 못하는
것이 갇힌 것이다. 영이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에 육체 가운데 있는 것이 흑암에 처한 것이다.
이스라엘을 애굽에 종살이 하게 하신 것은 애굽에 가둔 것이요, 다른 말로 죄가운데 가둔 것이다. 애굽은 세상을 상징하고 죄를 상징한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갇혀있다 라는 말은 세상에 갇혀있다 라는 말이다. 사도바울이
말하기를『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성경은 율법을 말한다. 율법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다 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 가두어서 종살이 하게 했다 라는 말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모든 인간들이『율법 아래에 다 갇혔다』라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 의하면 모든 인간들은 다 죄인이라는 말씀이다. 이스라엘은
애굽에 갇힌 죄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율법을 주신 그 자체가 죄 아래에 갇혔다 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갇힌 것은 이스라엘이 율법을 받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깨달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 처럼, 성경으로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신 것을 깨닫는 것은 율법을 지키고 행하는 이스라엘이 죄 아래에 갇혀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깨달아라 하는 것이다.
35-37.『너희는 재판할 때나 길이나 무게나 양을 잴 때 불의를 행하지 말고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 나는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너희는 내 모든 규례와 내
모든 법도를 지켜 행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재판은 공의로워야하며 정확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재판을 우리는 불의한 재판이라고 부른다. 불의는 하나님의 공의에서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개념이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를 추상적이거나 사변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신다. 길이, 무게, 양을 재는 것, 그리고 공평한 저울과 추와 에바와 힌을 사용하는
것, 매우 구체적이고 실생활에 밀접한 도구들을 인용하여 공의에 대한 실효성 있는 규례를 말씀하신다. 표면적으로는 율법을 잘 지키면 구원받는 것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를 간과하지 않는 것이다. 반드시 하나님은 죄를 물으신다. 그런데, 하나님은『내 모든 규례와 내 모든 법도를 지켜 행하라』백성들은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리고 잘못을 했을 때는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하심을 받았다. 이런 일들이 계속되므로서, 제의는 형식화
되고 그 의미조차 잃게 된된 것이다. 하나님은 제사를 통해서 씨의 약속인 그리스도를 발견하도록 원하셨는데, 백성들은 율법을 지키므로서 의를 이룰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씨의 약속인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였지만, 바리새인들과 제사장, 서기관들은 메시야를 죽여버렸다. 그런데, 이는 하나님의 구원방식인 것이다. 백성들의 죄를 사해줄 수 있는
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열리게 된 것이다. 율법을 지켜 행하다가 복음을 발견하는 자는
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로마서 6장 7절에서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난다고 말씀하셨다. 예수와 함께 죽은
자가 죄(옛사람)에 대해서 죽은 것으로 하나님이 인정하신다는
말이다. 로마서 6장 3-5절에서『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하나님의 법은 죽은 자가 되라는 말씀이다. 물세례와 불세례가 이와 같은 죽음의 모습이다. 물세례는 죄에 대해서 죽음이며, 불세례는 옷과 같은 혼에 대한 죽음이다. 옷을 그리스도의 옷으로 갈아 입음으로 영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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