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장 1-27절
20장 1-27절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여기에는 이미 18,19장에서 엄숙히 경고되고 금지된 가증스런 악행과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그에 대한 처벌 규정으로서, 곧 하나님께서 가장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범죄가 열거되어 있다. 20장에 열거된 죄를 유형별로 크게 이분하면 첫째, 우상 숭배죄이며(1-7절) 둘째, 성적
음란 죄이며,(10-21절) 후반부에는 이러한 모든 멸망의
가증한 죄악에서 떠나 거룩하게 되라는 하나님의 거듭되는 명령으로 끝을 맺고 있다(22-26절). 죄악으로부터 분리되는 거룩은 십자가에서 죄에 대한 죽음과 새생명으로 태어나는 부활과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죽어 마땅한 범죄들에 대해서 규례로 말씀하셨는데,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이와 같은 죽어 마땅한 존재라는 것을 말해주신다. 직접 죽을 수 없으니,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으라는 것이다. 당시 구약에서는 동물과 함께
죽으라는 것이다.
2-5.『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라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면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 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서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음이라 그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는 것을 그 지방 사람이 못 본 체하고 그를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그 사람과 그의 권속에게 진노하여 그와 그를 본받아 몰렉을 음란하게 섬기는 모든 사람을 그들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
몰렉을 숭배하는 죄에 대해서 먼저 언급하고 있다. 몰렉은
앗수르에서 기원했다. 머리는 소의 모습을 하고, 몸은 사람의
몸이다. 청동으로 만든 우상인데, 손을 뻗어서 아이를 안는
자세를 하고 있다. 그래서 아이를 몰렉에게 바치면, 아이를
불 속에 넣는 것이다. 이런 이방의 우상숭배가 이스라엘에도 들어온 것이다. 이스라엘의 지명 중에 힌놈의 골짜기가 있었는데, 그 곳에서 몰렉
제사를 했던 것이다. 힌놈의 골짜기를 음부(게헨나)로 불리워지기도 했다. 아이를 바치면 다른 가족이 잘 살 수 있다는
미신 때문이었다. 잘못된 미신으로 아이가 가족을 위한 희생제물이 된 것이다. 이런 마음들이 결국 자기 중심의 생각때문이었다. 자기라는 생각은
그 마음 속에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우상이 도사려 있다. 바로 탐욕이다. 오늘날에도 탐욕으로 인하여 자기를 위하여 가족을 희생시키는 자가 있다면 바로 몰렉에게 제사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부모가 자녀를 성공이라는 재물 앞에서 제물로 바쳐지게 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 우상 숭배자에 대한 공개 처형 방법이다.
돌로 쳐죽이는 것은 히브리 사회에서 가장 극악한 죄에 대한 일종의 공개적 사형법으로서 구약 시대 때 널리 유포된 형벌이다. 그런데 그 형벌 집행은 범죄자와 지연, 학연, 혈연 혹은 증인 등 그 범죄 유발 형태와 밀접히 연관된 사람들로 하여금 시행토록 했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공동체의 연대 책임성을 가르치고, 우상숭배의
가증함을 여러 사람에게 교훈하여 범죄 예방의 효과를 거두기 위함때문이었다.
“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진노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트 파나이 바이쉬”(אֶת־פָּנַי֙ בָּאִ֣ישׁ )는 '나의 얼굴을 그 사람에게서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곧 하나님께서
발하시는 진노의 직접성과 엄정성을 잘 보여 준다.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여기서 '끊는다'에 해당하는 카라트(כְרַתִּ֥י)는
“자르다, 베어 넘어뜨리다”는 뜻으로, 이웃에게 죽임당할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복된 언약 관계하에 있는 이스라엘 공동체로부터 단절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음이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특별히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가나안의 가증한 우상을 섬기게 된다면, 이는 결과적으로 참된 경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그러한 행위는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과 그분의
임재의 상징인 성소가 더럽힘을 당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마는 것이다. 한편 여기서 '욕되게 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할랄(חַלֵּ֖ל)은 '상처를 입히다'란 뜻이다.
우상 숭배죄를 방조 하거나 묵과한 자에 대한 경고 및 처벌 규정이다.
반드시 죽이라는 것이다. 죽이지 않으면 공동체에서 끊어지게 한다는 말이다. 표면적으로는 이것은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의 연대 책임성 및 유기적 공동체로서의 지체의식을 일깨워 주고 또한
의무화한 규정이다. 이웃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려 우상 숭배죄에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영적인 의미로서 이런 우상숭배는 영적인 간음죄에 속한다. 하나님을 신랑으로 표현하는데, 하나님의 신부가 다른 곳으로 마음을
돌리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죽이라고 명령한 것을 들 수 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이삭을 아들로 얻었지만, 그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들이라기 보다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이다. 죽어야 할 대상을 우상처럼 움켜지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이
된다. 성도에게 있어서 죽어야 할 우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 될 것이다.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진 것을 믿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하나님 외에 다른 곳에 두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를 경고하고 있다. 그래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는 것이다. 죽이지 않는다면, 하나님 백성으로부터 끊어진다는 경고를 하신다.
6.『접신한 자와 박수무당을 음란하게 따르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신접한 자와 박수는 모두 미신적으로 또는 악한 귀신의 힘을 빌어 장래에 되어질 일을 예언하거나 인간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자들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절대 초월적인 능력을 하찮은 귀신의 힘으로 대치하는 자들이다. 따라서 이러한 자를 추종하거나 따르는 자들은 언약 공동체인 이스라엘의 인격적 사회 관계를 깨뜨리며, 또한 하나님의 은총을 배반한 자들로 여호와의 진노를 면할 수 없다.
한편 여기서 신접한 자와 박수를 따르는 종교적 타락에 음란이란 말을 사용한 이유는 당시 이방인들의 우상 숭배 제식이 성적으로 문란했기
때문이며, 또한 우상숭배 행위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에 맺은 순결한 사랑의 언약을 배신하는 간음 행위였기
때문이다. 점을 보러 다닌다거나, 미신을
좋아하는 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남자나 여자가 접신하거나 박수무당이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곧 돌로
그를 치라 그들의 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가리라. 결국 죽은 자의 혼을 불러내어서 따른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귀신을 따르는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귀신을 따르는 자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기 때문이다. 사무엘상 28장 6-7절에서『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하니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신명기 18장 9-11절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 그의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에 용납하지 말라』 오늘날에도 영지주의를 따르는 자들이 교회 안에서
많이 있다. 사람은 원래 신성이 있는데, 열심히 노력헤서
신성(하나님의 형상)을 밝혀야 한다거나, 신비한 경험에 빠져, 하나님을 뜻을 왜곡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
7.『너희는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할지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교회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이 있었는데, 아담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형상이 사라졌으므로 열심히 노력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을 한다. 그들은 스스로
깨끗해 질 수 있는 존재로 생각한다. 하나님이 규례로 정하신 것은 너희들은 그런 존재가 되지 못함을
말해주신다. 그래서 제사를 드리다가 장차 약속의 자손이 아니면 구원은 불가능함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하나님나라에서 하나님 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사탄의 미혹을 받아서 이 세상에 왔으니, 『어디 너희들 하나님없이 스스로 거룩해져 봐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기어이 거룩해져 보겠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면, 정말 어리섞은 자가 될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거룩으로 인정하시지 않는다. 로마서 6장 7절에서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난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언급하는 죽어 마땅한 범죄들은 이 세상의 사건들을 통해서 말했지만,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것이 영적 우상숭배요, 하나님 아버지를 모욕하는 것이요, 영적
간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규례를 그대로 세상 사람들에게 적용하시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직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자에게는 이러한 규정들이 적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율법에 의해서 예수와 함께 죽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는 자들은 예수와 상관없는 자와 예수를 믿지만 율법을 따르는 자가 된다. 예수를 믿지만 율법을 따르는 자는 두 마음을 품은 자로서 영적 간음하는 자다.
하나님께서 이런 자를 분노하시는 것이다.
8. 『너희는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나는 너희를 거룩케 하는 여호와니라』
베드로전서 1장 15-16절에서『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인간이 예수님처럼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행실을 예수 십자가에 못박아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룩해지는 것이다. 이게 부활이다. 현재적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아니요 거룩한 자가 되지 못한다. 표면적으로는 하나님이 주신 규례를 잘 지키면 거룩한 자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할지 모르나, 이게 바로 유대주의자들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모두가 거룩한 자가 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라는 것이다.
9.『만일 누구든지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그가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였은즉 그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의 부모를 통해서 하나님을 떠난 자를 이렇게 저주하신다는 것을 말해주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영들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출애굽기에도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약속있는 계명이라고 했다. 약속은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부모를 통해서 그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서『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특히 부모를 저주하는 것은 자신이 죄악 속에서 태어난 존재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죄로부터 해방되고 벗어났다고 믿었는데, 부모를 저주함으로서 다시 죄의 종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율법 속으로 돌아가는 자가 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이런 자는
거룩한 이스라엘 공동체로부터 단절되어 돌로 쳐 죽임을 당하는 형벌을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의도는 영적 간음을 하는 너희들은 영적 아버지인 나를 저주하고 있는 패역한 자라는
것이다.
10.『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표면적으로, 자손을
얻기 위한 신성한 의미를 지니는 성관계를 쾌락을 얻기 위해 이웃의 배우자와 행하는 것은 부정함에 불신앙을 더하는 매우 크나큰 범죄였다. 그러한 부정을 저지른 남녀는 모두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가정을
깨뜨리는 것뿐만 아니라 거룩한 공동체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가증한 죄였다. 이 조항은 십계명의 일곱번째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일곱째, “간음하지 말라”. 간음은 영적 간음을 의미하며, 하나님도 믿고 바알도 믿는
그런 모양이다. 세상도 좋고, 하나님도 믿는 그런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었으며,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만연되어 있다. 인본주의, 율법주의, 영지주의로 교회의 신도를 혼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11.『누구든지 그의 아버지의 아내와 동침하는 자는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범하였은즉 둘 다 반드시 죽일지니 그들의 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가리라』
아버지의 아내는 계모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하체로 번역된 에르와는 벌거벗기다 라는 뜻의 '아라'에서 파생된 말로 곧 '나체가
된 상태를 의미한다. 노아가 장막에서 포도주에 취해서 벌거벗었다 라고 표현되어 있으며, 함의 아들 가나안이 이를 보므로 저주를 받았다고 표현한다. 창세기
9장 24-25절에서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노아가 장막에서 포도주에 취해서 벌거벗었는데, 함이 이를 보았다는
것이다. 셈과 야벳은 보지 않고 뒤걸음쳐서 옷을 덮허주었는데, 가나안은
이로 인해서 저주를 받았다고 한다. 장막은 성전을 의미한다. 성전에서
벌거벗는 것은 자기를 내려놓는 것을 의미한다. 영적으로 바라보면 죄에서 벗어나는 것이지만, 육적으로 바라보면 죄를 바라보는 부끄러움의 상태를 나타낸다. 함이나
가나안은 육적인 눈, 세상의 눈으로 성전을 바라보므로 저주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범한다』는 것은 세상의 눈으로 벌거벗은 상태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래서 옷을 입는 것이다. 옷을 벗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어야 하는데, 육적 옷을 입는 것이다.
12.『누구든지 그의 며느리와 동침하거든 둘 다 반드시 죽일지니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하였음이라 그들의 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가리라』
가증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테벨'은 혼합, 혼잡'이란 뜻이다. 하나님과 우상을 겸히 섬기는 자처럼 영적으로 혼잡하는 자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질서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가 된다.
하나님과 세상을 겸히 여기는 자는 무질서한 자가 된다.
13.『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표면적으로는 동성간의 성행위를 지적하는 것이다. 남자가 남자와 동침한다는 것은 영적으로는
남녀가 하나가 되듯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하나가 되지 못하고 하나처럼 유사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사역을 앞두고 제자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셨는데,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저희들도 우리와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하나가
되지 못하고, 하나인 것처럼 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처럼 되기 위해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가증한 일이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함께 부활한 것을 믿는 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인 것이다.
14.누구든지 아내와 자기의 장모를 함께 데리고 살면 악행인즉 그와 그들을 함께 불사를지니 이는 너희 중에 악행이 없게 하려 함이니라
'악행'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짐마(זִמָּ֣ה)”는 음모를 꾸미다 라는 뜻의 “자맘”에서 파생된 말로, 곧 어떤 흉악한 (음란한)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미리 게획하고 공모하는 사악한 범죄 행위를 가리킨다.
표면적으로는 아내와 장모를 아울러 취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의 근간과 창조의 위계 질서를 어지럽히고 파괴하는 극악한 범죄로
화형에 처해졌다. 그런데 여기서 화형은 산 사람을 불에 태워 죽이는 것이 아니라 먼저 돌로 그 사람을
쳐 죽인 다음, 그 주검을 불에 태우는 것을 의미한다. 이
외에도 모세 율법은 제사장의 딸이 행음한 경우에도 화형에 처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창세기 2장 24절에서『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니라』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부모를 떠나지 않고, 아내와 한 몸을 이룬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부모는 어떤 존재인가? 부모와 하나가 되는 것은 육적 존재라는 의미가
된다. 육적 존재와 영적 존재가 혼합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를 가증하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육적 존재는 죽고, 영적
존재로 되라고 하는데, 인간들은 가증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특히
부활을 인간의 육체가 죽고 다시 그 육체가 다시 살아나는 것으로 믿는 자들은 다 이와 같은 자들인 것이다.
15-16.『남자가 짐승과 교합하면 반드시 죽이고 너희는 그 짐승도 죽일
것이며 여자가 짐승에게 가까이 하여 교합하면 너는 여자와 짐승을 죽이되 그들을 반드시 죽일지니 그들의 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가리라』
표면적으로는 당시 애굽 지역에서는 우상 숭배 제식때 여자들이 그 제사 의식의 일부러 수염소와 성교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수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을 짐승 이하로 취급하는 극히 부패한 범죄로, 짐승과 사람을 함께 죽이는 형벌에 처했다(출22:19).
그러나 영적으로는 제사에 사용할 짐승을 죽이는 행위는 죄인과 하나되는 모양이다. 그 짐승이 죽는 것은 죄인도 함께 죽은 것을 의미한다. 짐승의 피가
곧 죄인이 죽어서 흘리는 피와 같은 개념인 것이다. 죄인은 이와 같이 20장 15-16절과 같은 죄로 죽는 모양이다. 세상의 모든 자들이 이와 같은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죽어야 할 자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17.『누구든지 그의 자매 곧 그의 아버지의 딸이나 그의 어머니의
딸을 데려다가 그 여자의 하체를 보고 여자는 그 남자의 하체를 보면 부끄러운 일이라 그들의 민족 앞에서 그들이 끊어질지니 그가 자기의 자매의 하체를
범하였은즉 그가 그의 죄를 담당하리라』
하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르와토(עֶרְוָתֹו֙기본형은 에르와)는 벌거벗은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데
성경에서 하체를 본다는 의미는 벌거벗은 상태를 본다는 것으로 죄를 본다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벌거벗었을 깨닫고 무화과 나무의 잎을 엮어 부끄러운 것을 가렸다.
부끄러운 일(헤세드 חֶ֣סֶד) 이말은 인자함, 함축적으로 하나님을
향한경건, 드물게는 (반대로)책망, 또는(주관적으로)아름다운 은총, 선행, 친절하게, 인자한, 인애, 자비, 연민, 견책, 악한일 등을 의미한다. 서로 반대되는 의미가 공존하므로, 반어법에 사용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끊어질지니” 일차적인 의미는 육적 생명이 끊어져 죽임을 당한다는
뜻이요, 이차적인 의미는 영적 생명이 끊어져 하나님과의 복된 언약
관계로부터 단절된다는 뜻이다.
표면적으로는 부모가 재혼한 경우, 각각 자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서류상 형제이지만, 육적으로는 남남이다. 그런데, 이들이 서로 교합하면, 부모가
교합하고, 그 자녀들도 교합하는 이중적인 교합의 결과가 발생한다. 그어나
영적으로는 하나님과 세상 풍요의 신 바알과 아세라와 함께 섬기는 것을 상징한다. 하나님은 이를 가증히
여기는 것이다.
18.『누구든지 월경 중의 여인과 동침하여 그의 하체를 범하면 남자는
그 여인의 근원을 드러냈고 여인은 자기의 피 근원을 드러내었음인즉 둘 다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월경중인 여인과의 성교 금지 규례이다. 표면적으로 “근원을 드러내었고”에서 근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코르(מְקֹ֣ור)는 “파다, 솟아나다”라는 뜻의 '쿠르'에서 유래한 말로, 여자의
생리적 분비물 곧 피나 액체 등이 흘러 나오는 곳을 의미한다. 따라서 근원을 드러내었다는 말은 월경
중인 여인과 성교함으로써 생명의 상징인 피를 수치스럽게 취급하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미이다(17:10-14).
영적으로는 레위기 15장 19절에 의하면,『어떤 여인이 유출을 하되
그의 몸에 그의 유출이 피(담)이면 이레 동안 불결하니(니다) 그를 만지는 자마다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요』 담(דָּ֛ם)은 피이다. 피는 생명을 의미한다. 생명이 유출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하여는 부정하다는 것이다. 영적으로
피의 유출은 생명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여인은 이 땅의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난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생명이 없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정결하라는 것이다. 육의
몸을 벗고,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라는 것이다. 그리고
육의 몸에 의해 기억된 모든 것을 버려라는 것이다.
19.『네 이모나 고모의
하체를 범하지 말지니 이는 살붙이의 하체인즉 그들이 그들의 죄를 담당하리라』
살붙이라고 번역된 쉐에로(שְׁאֵרֹ֛ו 기본형은 쉐에르)는 부풀다, 여분이 있다는 샤아르에서 어근을 찾을 수 있다. 의미로서는 ‘살’, 싱싱한, 또는 먹을 수 있는 고기, 일반적으로 어떤 종류든간에 음식, 상징적으로는 혈육에 의한 친족, (가까운)친척(여자, 남자), (가까운)혈연관계 등을 의미한다.
범하다 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테갈레(תְגַלֵּ֑ה 기본형은 갈라)는 ‘발가벗기다’(특히 수치스런
뜻에서) ; 함축적으로는(보통 옷이‘벗겨진’포로들을)‘끌고가다’ 등의 의를 갖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그들의 죄를 담당하리라 라고 번역된 (아라 아본 나사)의 히브리어를
보면 הֶעֱרָ֖ה עֲוֹנָ֥ם יִשָּֽׂאוּ׃
이다. 여기에서 아라(הֶעֱרָ֖ה )는 갈라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개역개정의
번역과정에서 빠진 것이다. 다시 번역하면, “그들이 발가벗긴 그들의 죄를 담당하리라” 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바라새안들과 서기관들에 의헤서 발가벗긴 채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 죄는 발가벗긴 그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 죄를 담당하리라” 여기서 '담당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사우(יִשָּֽׂאוּ׃기본형은 나사)는 '짊어지다, 겪다, '들어올리다 등의 뜻이 있다. 즉 이 말은 표면적으로는 자신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자신이 직접 짊어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영적으로는 예수님이 그 죄를 담당한다는 의미가 된다.
20.『누구든지 그의 숙모와 동침하면 그의 숙부의 하체를 범함이니
그들은 그들의 죄를 담당하여 자식이 없이 죽으리라』
표면적으로는 “자식이 없이 죽으리라”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것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영원한 축복이며 명령이다(창1:26-28). 그러나 이 축복은 일부일처라는 신성한 결혼 제도를
통해 주어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신성한 결혼 제도를 파괴하는 자는 오히려 그 축복이 “자식이 없이 죽으리라” 의 저주로 바뀌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히브리인들은
특별히 혈통을 중요시 했으며, 후손이 없는 것을 큰 수치 또는 하나님의 저주로 여겼다(삼상1:6). 히브리 사회에 존재하던 계대 결혼, 곧 어떤 사람이 자식이 없이 죽었을 때 그 형제가 죽은 자의 아내와 동침하며 대를 이을 아이를 낳아주는 법
또한 혈통을 중요시하던 히브리인의 전통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자식은 약속의 씨를 의미한다. 약속의
씨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시다. 영적 간음을 하는 자들은 약속의 씨가 없는 것이다. 창세기 6장 1-5절에서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사람의 딸들은 약속의 씨가 없는 자들이다. 하늘의 아들들은 약속의 씨가 있는
자들이다. 이들이 섞이므로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하셨다는 말이다. 이게
물세레라는 것이다.
21.『누구든지 그의 형제의 아내를 데리고 살면 더러운 일이라 그가
그의 형제의 하체를 범함이니 그들에게 자식이 없으리라』
“더러운 일이라“ '더러운 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닛다'는 '멀리 던져
버리다'란 뜻의 '나다드'에서
유래한 말로 이스라엘 중에서 멀리 내던져 버려야 할 가증스런 죄악을 가리킨다.(스 9:11).
“형제의 아내를 데라고 살면” 히브리 사회의 독특한 제도인 계대 결혼법과 연관시켜 생각해 보면, 이는 형제가 살아있을 경우, 또는 형제가 죽었으나 슬하에 자녀를
남기고 죽은 경우에만 적용되는 법이다. 그러나 자식이 없는 경우에는 계대 결혼법이 적용된다. 자식이 없다는 것은 육적으로는 대를 이을 씨가 없다는 것이지만, 영적으로는 약속의 씨가 없다는 것이다. 약속의 씨가 없으므로 부활에 대한 약속도 없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서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세례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연결시킨다. 육신적으로 죽으면, 영적으로 부활이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자들은 하나님을 떠나 영적으로 간음했는데, 이를 깨닫고 육적으로
십자가에서 죽으면(자녀가 없이 죽으면), 영적으로 부활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다. 부활은 생명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살아있는 자(부활한 자)의 하나님이신 것이다. 예수님이 사두개인과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계대결혼과
부활을 함께 말을 하는 것이다. 계대결혼해서 다 죽으면 그 여자가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인가 라는 질문인데, 예수님은 부활에 대해서 천사로 돌아간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22장 29-30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22『.너희는 나의 모든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여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거주하게 하는 땅이 너희를
토하지 아니하리라』
규례와 법도는 하나님께서 모새를 통해 하달하신 모든 지시사항 및 명령을 가리킨다. 그리고
히브리 어법상 동의어의 반복이나 나열은 그 의미 자체를 강조하는 용법이다. 이런 의미에서 '규례 법도'는 곧 하나님의 명령을 지칭하는 강조 용법이다.
“지켜 행하라” 이 말의 기본형 '솨마르'는 '가시로써 올타리를 치다, 사방에 주의를 기울여 경계를 하다'란 뜻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곧 하나님께서 명하신 규례와 법도로써 자신의 울타리를 삼아 결코 이방의 가증스러운 죄악들이
한시도 침범 못하도록 주의를 단단히 기울이라는 뜻이다.
“그리하여야...토하지 아니하리라” 이는 하나님 언약의 성격을 잘보여 준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인도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축복을 누리지만 그 축복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께서 명하신 규례와 법도를 잘
지켜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규례를 불순종 할 때는 그들 역시 이방인들과
다름없이 그 땅에서 쫓겨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죄에 대하여는 추호도 용납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속성을 깨닫게 된다. 한편, 여기서 '토하다'(콰야)란 말은
멀리 뱉어 버리는 행위를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서 뱉어 버리는 주체가
'땅'인데, 이것은 땅을 의인화시킨 용법으로서, 곧 하나님의 창조물인 땅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민족을 받아들이기를 심히 꺼려한다는 의미이다.
20장 10-21절에는 간음하는 행위에 대한 규례를 말씀하셨다. 그리고 20장 22절에서 규례와 법도를 말씀하신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육적 간음이 되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세상을 사랑하는 것을 영적 간음이라고
말한다.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을 성경에서는 혼인과 비유된다.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 영적 간음인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갔다고 말하면서 율법을 따르는 죄도 영적 간음죄다. 율법을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설명한다. 남편이
율법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살 동안에 율법이 주관한다. 로마서 7장 3절에서『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율법에 대해서 자유하게 되는 것은 십자가의
죽음 뿐이다. 자신은 십자가에서 율법에 대해서 죽지도 않으면서 『성령받았다』 고 말하는 것 자체가 영적
간음이라는 말이다. 율법에 매여있으면서 성령을 받았다고 말하는 자를 음녀라고 말하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율법에 대해서 죽지 않으면 다 율법에 매여있는 것이다.
다 죄인이다. 많은 교회 사람들은 자신이 율법에 대해서 죽지도 않으면서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성령을 받는다고 말한다. 음녀들이다.
23.『너희는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의 풍속을 따르지 말라
그들이 이 모든 일을 행하므로 내가 그들을 가증히 여기노라』
풍속(훅카)은 '새기다. 습관이 되다'란
뜻의 '하카크'에서 파생된 말로, 곧 여기서는 이방의 타락한 온갖 관습, 제도, 법, 풍습 등을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려는 자들도 족속의 풍속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신다.
레위기 18장 3절에서 “너희는 그 거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좇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가나안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한다.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가나안에 이런 가증한 풍속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따르지 말라는 것이다.
신명기 7장 1-2절『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센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겨 네게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어떤 역사적인 사실과 연관하여 영적 교훈을 준다. 가나안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며, 이는 성도의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 되었다. 이는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의 영이 흙속에 갇히므로 인간이 된 것이다. 첫사람 아담이 육체가 되어 인간들에게
죽어야 할 죄의 몸을 주었고, 마지막 사람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므로 다 인간의 죄에
대해서 해결하신 것이다. 이게 세례이다.
물세례는 옛사람(죄)에 대해서 죽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혼은 더렵혀져서 인간의 노력으로 개선할 수 없다. 그래서 불(성령)에 태워지고
하늘로부터 오는 옷(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야 한다. 이게 성령 세례이다. 성령세례를 받는 자는 부활된 것이다. 사람이 살아 있을 때 부활이 이루어지면, 성도의 심령에 성전이 세워지고
하나님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심령 속에는
가나안의 일곱 족속과 같은 것이 남아 있어 이를 제거해야만 한다. 신명기 7장 1-2절에서 처럼 싸워 이기라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 견고하게 자리 잡은 것은 육체의 본성, 혈연관계, 사상과 이념, 종교심, 자기의
의, 지배하고 싶은 욕망, 인공지능(지식과 경험) 등이다. 이전의 “나” 라는 정체성이 바로 이 일곱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성도의 정체성은 하나님(엘로힘)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성도가 되고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져도
이 일곱가지의 악한 모습을 부셔야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전쟁에서 승리로 이끌고 가신다.
24.『내가 전에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 내가 그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너희에게 주어 유업을 삼게 하리라 하였노라 나는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을 때, 자손과 땅을 약속하셨다. 자손은 여인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리고 땅은 가나안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상징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가리키는 수사학적인 표현이다. 그런데 이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묘사한 것은 반드시 팔레스틴 땅이 실제로 그 만큼 비옥해서라기 보다, 그 영적 의미에 있어서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장차 성도들에게 기업으로 주실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만민 중에서 구별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특별히 선택하여 언약의 백성으로 삼으신 사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삼으신 것은 그 선민 자체의 의미보다는 그 선민을 통해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다.
25.『너희는 짐승이 정하고 부정함과 새가 정하고 부정함을 구별하고
내가 너희를 위하여 부정한 것으로 구별한 짐승이나 새나 땅에 기는 것들로 너희의 몸을 더럽히지 말라』
“정하고 부정함”의 구분은 성경에
기록된 바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 종교적 의미를 지닌 구분으로, 레위기 11장에서 동물을 통해서 구별을 강조하셨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동물을 나누신 것이다. 이 동물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깨달아라는 것이다. 11장 1-8절까지는 땅의 짐승들의 구별을, 9-12절까지는 물고기의 구별을 13-19절까지는 새들의 구별을 하셨다. 20-23절까지는 날개 달린
곤충을 구별하셨다.
정한 동물과 부정한 동물의 구별은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의 구별을 의미한다. 영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아닌 자를 대변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천하만민의 모델로
택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지 못하고 결국 멸망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단지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멸해지는 모든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육지의 모든 짐승 중에서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구분하시면서, 먹을 수 있는 짐승의 외형과 특징을 다음과 같이 밝히셨다. 굽이 갈라져 쪽발이고 한번 삼킨 음식을 다시 게워 내어 새김질하는 것. 곧
소와 양, 염소 등이 이에 속했다.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동물을
통해서 하나님을 떠난 존재라는 것을 깊히 새김질하듯이 통찰하라는 것이다. 또한 굽이 갈라지듯이 구별의
의미를 생각하라는 것이다.『새김질하는 동물, 굽이 갈라진
동물』을 통해서 이해될 수 있다.
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은 짐승으로 낙타와 사반(바위오소리, 바위너구리), 토끼를
소개하며, 이것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부정하니 먹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등장하는 부정한
짐승들이 창조 때부터 부정한 것으로 창조된 것이 아닌, 이스라엘 자손을 세워 주시는 율법의 관계에서
부정한 부류로 분류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과 언약을 세우시면서 그
동물들을 언약의 도구로 삼아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통해서 죄를 발견하도록 하신 것이다.
물고기 중에서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것을 먹도록 했다. 지느러미는
유영할 수 있도록 해주며, 비늘은 자신의 몸을 보호할 수 있다. 이
동물을 통해서 사악한 영적 존재로부터 공격을 피하고 막을 수 있도록 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육식
새들은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는 새들이다. 이 새들을 통해서 영적으로 죽이는 것들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았다. 율법을
잘 지키면 의로운 자가 될 수 있도록 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서 의를 이룰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의를 이루려는 생각을 포기하고,
장래에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것인데, 백성들은 자기의 의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자기의 의는 영을 죽이는 역할을 한다. 자기의 의를 벗어버려야만
구원받는 것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자기의 의를 내세워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 이들은 부정한 새들과 같은 존재들이 된 것이다.
곤충도 날개와 다리가 있지만 날지도 뛰지도 못하면 부정하다는 것이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은 천하만민의 모델이 되었다. 온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다. 구원이 이스라엘에서 이방인으로 넘어 가버렸다. 오늘날도 성경은 성도들에게
너희는 빛과 소금이라고 말씀하신다.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금은 언약을 상징한다. 언약 백성이라는 것이다. 빛은 영이 살아나서 하나님의 빛을 소유한 자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가 그렇다는 것이다.
26.『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를 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
“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므로 신도들은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려고 애를 쓴다. 하나님께
거룩한 자는 자기를 제물로 드리는 삶이다. 영적인 산 제물이라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 대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자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시켜 주시는 것이다. 부활을
믿는 자, 즉 살아있을 때 부활을 믿는 자가 하나님께 거룩한 자가 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나의 소유를 삼으려고” 직역하면 '나의 것이 되게 하려고' 이다. 그러나 병행구인 출애굽기
19장 5절에서 '소유'는 '세굴라'로 나타나는데, 이때 '세굴라'는 특별히
귀중하게 보관하는 값비싼 '보배'를 가리킨다. 이는 선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애정과 관심의 정도를 잘 보여 준다. 진정
하나님에게 있어서 이스라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귀하고 값진 보배였다(신 26:18;사 43:3,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보배가 이방의
더러운 오염 물질로 훼손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그 오염 물질로부터 자신을 정결케 보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규례와 법도를 그 백성들에게 주셨던 것이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자는 예수와
함께 죽고, 살아있을 때, 부활을 믿는 자가 되는 것이다.
27.『남자나 여자가 접신하거나 박수무당이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곧 돌로 그를 치라 그들의 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가리라』
신접한자나 박수는 하나님께서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사단의 앞잡이로 자기 자신이 범죄할 뿐만 아니라,
타인까지 죄로 오염시켜 결국 한 사회 전체를 파괴시킨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회는 이들을
반드시 죽여 그 악을 근절시켜야만 했는데, 이는 여호와 신앙과 가나안 종교 사이에는 타협점이 없다는
사실을 교훈해 준다. 오늘날 하나님과 세상을 겸히 섬기는 자가 여기에 해당된다. 하나님은 이런 자에게 나는 너를 모른다 라고 말을 하실 것이다.
“돌로 그를 치라” 표면적으로는 유대인 사회의 처형법상 가장 극악한 범죄자에 대하여 시행하는 극형법으로, 주로 우상 숭배자나 성적 문란죄를 저지를 자에게 행해졌다. 여기서
돌로치는 사형법이 주는 교훈은 첫째, 그 죄악의 가증스러움이 어떠한지를 생생히 깨우쳐 주기 위함이며
둘째, 그리하여 그러한 범죄를 다시는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범죄 예방 효과를 거두기 위함이다. 그러나 영적인 의미로서 돌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을 의미한다. 영적 간음한 자는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구원받을 구 있음을 의미한다.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표면적으로는 즉 피흘림의 원인이 자기 자신의 책임하에 있다는 뜻으로, 곧 죽어 마땅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영적으로 예수와 함께 죽은
자는 예수의 피가 곧 죄인이 죽어서 흘린 피가 되고, 죄(옛사람)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로마서 6장 6-7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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